진보정치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대중정당'이라는 걸 해보고 싶을 것이다.
오랫동안 사표론에 밀려 힘없는 소수의 설움을 겪어왔으니 말이다.
그러니 '진보적 대중정당을 하자'는 말에 '싫다. 소수라도 진보의 가치를 유지하는 소금 같은 정당을 하겠다'고 말하는 건,
어쩐지 설득력이 별로 없어 보인다. '대중정당'이 절대 선善인 이 프레임 속에서 '대중정당에 반대'하는 것은 현실정치를 무시하는
순진한 이념형 운동권들의 주장이나 다를바 없는 것으로 격하될 뿐이다.
물론 나도 진보신당 내에서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이하 '노심조')와 결별하고 '녹색사회당'을 만들겠다는 장석준, 김현우 등의 활동가들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는 건 아니다. 진보신당이 분열된 후 마음에 드는 정당이 없어진다고 해도, 제대한 후 녹색사회당의 당원이 될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더 설득력이 없게 들리는 건, 민주노동당과 합당을 해야 새로운 진보정당, 진보적 대중정당을 만들 수 있다는 노심조의 주장이다.
도대체 대중정당이란 뭘까?
많은 대중의 지지를 얻는 정당을 대중정당이라고 한다면, 한나라당과 민주당도 대중정당이라고 해야 할 거다. 양당의 득표율을 합하면 선거 때마다 90%를 넘어가니까, 사실 이 둘을 제외하면 우리나라에서 딱히 대중정당이라고 부를 만한 당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양당을 엘리트정당이라고 평가한다. 일반 국민과 계층적으로 완전이 다른 소수의 사람들이 경제, 사회 분야의 엘리트들로부터 돈과 지식을 후원받아 운영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평소 당 운영에 일반 당원들이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서구처럼 지역조직마다 일반 국민들 다수가 당원으로 가입하여 활동을 벌이는 것도 아니다.
그럼 이들과는 달리 약 5만명(민주노동당), 1만 5천명(진보신당) 규모의 진성당원에 의해 재정과 조직이 운영되고, 민주노총이나 전국농민회총연맹과 같은 '대중조직'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지금의 진보정당들은 대중정당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노심조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유가 다르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노심조가 보기에 진보정당이 대중정당인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지지율과 득표율이다.
2008년 총선때 3%에 약간 못미치는 정당득표(비례대표 당선자 없음)를 거둔 진보신당은 대중정당이 아니고, 2004년 총선때 13%의 정당득표(비례대표 당선자 8명)를 거둔 민주노동당은 대중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분들은 다시 민주노동당과 합쳐서 정당득표율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2012년 4월 총선에서 강기갑(경남 사천), 이정희(서울 관악), 노회찬(서울 노원), 심상정(경기 고양), 조승수(울산 북구) 등이 인물파워를 바탕으로 지역구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꺾어 20석을 확보하여 원내교섭단체를 이루겠다, 이렇게 하면 '진보적 대중정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민주노동당과 다시 합당해야 한다는 주장에 여러가지 명분이 달려있지만, 결국 핵심은 이거다. 자신들이 지역구에서 당선되어야 하고, 일단 진보정당이 하나가 되어 덩치를 키워야 대중정당이 되는 것이며, 그래야 민주당과도 대등하게 선거연합을 할만한 힘이 나온다는 것.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일단 20석이라는 목표 자체가 공상적인 수준이다.
다시 합친다고 했을 때 2004년과 비교하여 민주노동당이 달라진 게 무엇이 있을까? 내가 보기엔 이정희라는 참신한 인물이 관악구에서 한나라당에 도전한다는 뉴스거리, 그리고 노회찬-심상정이 그와 같은 당의 후보라는 점에서 일종의 '브랜드 통일성'으로 이익을 보는 것이 전부다. 민주노동당의 운동권스럽고 패권주의적인 운영방식이 극복된 것도 아니고, 그때에 비해 국민들에게 자신있게 내세울 새로운 비전을 마련한 것도 아니다. 2004년 총선은 탄핵반대 촛불시위의 여파로 진보-개혁세력이 대약진한 시기였는데, 2012년 총선은 '한나라당 심판'이라는 명분하에 민주당으로 표쏠림이 강하게 나타날 공산이 큰 어려운 여건에서 치러진다. 더군다나 6월 마지막주 민주노동당의 정당지지율은 3.8%에 불과하며, 진보신당 지지율 1.3%를 더해보았자 5%를 겨우 넘긴다.(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22843)
진보정당이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되지 않는 한, 재통합한 민주노동당이 얻을 수 있는 의석수의 최대치는 결코 2004년의 10석을 넘지 못한다.
만에 하나, 천운이 따라줘서, '진보 바람'이 불어서, 민주당이 지역구를 엄청 많이 양보해줘서, 한나라당의 선거전략이 '망작'이어서, 노심조의 구상이 실현되었다고 치자. 그래도 나는 그것을 '진보적 대중정당'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나는 그것을 인기있는 몇몇 진보정치인들과 그들을 조직적으로 후원하는 사람들의 정당이라고 말할 것이다. 당의 중심은 국회의원들이고, 당 운영은 기존의 운동권 정파조직간 세력판도에 따라 이루어지고, 핵심 활동가 소수에 의해 좌우되는 중요한 표결의 결과는 매우 예측가능하며, 당원들은 선거때 후원금을 내라는 전화를 받고 지도부가 정한 행동에 결합하라는 권유를 받는 정당. 다시 말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보수적 엘리트 중심 정당이라면, 재통합한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활동가 중심 정당에 불과할 것이고, 이 세 정당에게 '대중'은 동원의 대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얘기다.
물론 진보정당은 몇만 명에 달하는 진성당원이 있고, 당원들이 내는 돈으로 운영되므로 보수정당들과는 분명 다르다. 하지만 진보정당에 소속된 '대중'은 자기들만의 '운동권 문화'로 인해 더 넓은 범위의 대중과는 유리되어 있으며, '확장성'이 별로 없다. 이정희, 노회찬, 심상정 같은 인기 정치인들을 보고 당원으로 가입하게 될 (이전까지 어느 정당에 가입해 본 경험도 없는 사람이 태반일) 일반 대중은 당운영에서 배제된 채 팬클럽 회원 정도의 대우밖에 받지 못할 것이다. 이는 2008년 총선 직후 '지못미' 바람과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진보신당에 가입한 당원들이 노심조로 대표되는 지도부에게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살펴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보기에 이 시대에 맞는 진짜 진보적 대중정당을 만들고 싶다면, 2008년 촛불시위를 통해 드러난 대중의 행동방식을 당의 구조 전체에 결합시켜야만 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웹2.0시대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기반을 둔 행동하는 대중의 정당이다.
이런 생각은 지난 2008년 8월에 진보신당 게시판에 올라온 'fender'님 '진보신당 2.0 프로젝트' 구상을 보면서 조금씩 하게 되었고,
이후 이 블로그에 독후감을 적어놓은 '웹2.0과 한국정치'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더욱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아고라,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많은 경우 진보 활동가들이 예상할 수 없었던 방식과 속도로) 대중이 서로 공감하고 행동에 나서는 과정을 지켜보며, 점점 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벌써 3년 전에 정리된 아이디어지만, 나는 이런 방식의 정당을 가장 먼저 만드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최초의 '대중정당'을 구성하고 우리 정치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미 3년전에 나온 아이디어를 지금까지 철저히 무시한 채 상층부 연합정치와 트위터를 통한 '팬 관리'로 시간을 다 보내고 이제 와서 다시 민주노동당에 들어가자는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 같은 분들은 이런 방향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고 본다. 누군가는 진보신당을 만들 때 '진보는 진보해야 한다'고 했던가. 지금 그들은 '진보의 퇴행'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진보신당이 어떻게 되든 영구보존하고 싶은 자료와 고민들의 모음이다.
1. 글 링크
fender, '진보신당 2.0 프리젠테이션 자료 업데이트'
http://www.newjinbo.org/xe/272122
fender, '진보신당 2.0의 단계적 구축 방안'
http://www.newjinbo.org/xe/272545
fender, '온라인상의 평당원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제안'
http://www.newjinbo.org/xe/270467
노란간판, '진보운동의 새판짜기(온라인/미디어 중심) 1차 완성분'
http://www.newjinbo.org/xe/272488
나(2호선콩나물), '진보신당2.0, 혹은 온라인 전략만들기는 왜 이루어지지 못했을까?'
http://www.newjinbo.org/xe/276100
2. 파일 목록
진보신당2[1].0_프리젠테이션자료.pdf

